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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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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의 역사 

   1991년

 

핀란드의 헬싱키라는 곳에서는 한 대학생에 의해 GNU시스템에 적합한 커널이 개발되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리누스 토발즈의 리눅스였습니다. 당시 21살의 대학생이었던 리누스는, 앤디 타넨바움(Andy Tanenbaum)교수가 학생들의 학습을 주 목적으로 개발한 미닉스(MINIX)를 사용하던 중, 유닉스와 호환되는 공개된 운영체제의 개발 계획을 MINIX사용자 모임에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개발 할 운영체제가 "단지 취미이며 GNU처럼 거대하거나 전문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프로젝트 초기의 의도를 밝혔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리눅스는 이식성이 고려되지 않은, 다만 i386계열에서 운영되는 유닉스 호환 운영체제를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초기 버전 0.01은 가장 기본적인 커널만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실행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 얼마 후 리눅스 공식 버전인 0.02가 발표 되었는데, bash(GNU Bourne Again Shell)와 gcc(GNU C 컴파일러)정도가 실행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1992년

 

3월 리눅스는 0.95로 버전업 되었고, 인텔 x86칩에서 사용할 수 있었고,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추가 된 것이었습니다.

GNU커널로 개발 중이던 Hurd의 개발이 순조롭지 않았던, 스톨먼과 FSF는 유닉스 커널과 호환 가능한 커널인 리눅스를 GNU시스템의 커널로 채택하기로 하였습니다. 리눅스는 강력한 GNU C 컴파일러인 gcc로 컴파일된 많은 응용프로그램들을 가지게 되었고, 둘의 결합으로 GNU시스템은 완전한 구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리눅스의 커널부분은 리누스 주도 하에 계속 개발되었는데, 리누스는 최대한 확장 가능한, 즉 사용자에게 제어권이 있으며, 어떠한 인터페이스에도 종속되지 않도록 개발을 이끌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리누스는 그의 글을 통해서 리눅스의 성공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리눅스의 성공은 훌륭한 설계 원칙과 좋은 개발 모델 때문이라고…

   1994년

 

1년 6개월여 만에 버전 1.0 이 발표 되었고, 이 버전에는 네트워킹 기능 추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즈음, 리눅스에 확실한 수익모델이 있다고 판단한 밥 영과 마크유잉은 레드햇사를 설립하고, 최초로 자사에서 패키징한 레드햇의 최초 배포본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

리눅스는 더 이상 i386계열에서 돌아가는 학습용 운영체제가 아닌, 인텔, 디지털, 썬 스팍 프로세스에도 포팅됨으로 그 영역을 넓혔으며, 알파프로세서용의 64비트 리눅스도 등장하였습니다.

   1996년

버전 2.0이 발표 되었는데, 여러 프로세서를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컴퓨팅 파워가 추가되었습니다.

   1998년

 

만여명의 프로그래머가 뉴스그룹에서 코드 향상과 테스팅에 참여하였습니다.

   1999년

 

SMP 기능의 공식 지원으로 최대 16개까지의 CPU장착 가능해지고, 최대 동시접속 사용자수 2048명까지 지원하는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2003년 ~ 현재..

 

다양한 분야에 리눅스가 도입이 되고 있으며, IBM과 SUN이라는 거대 기업을 지원을 받으면서 Unix와 MS의 명성에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얼마전 금융권에 리눅스를 도입하기 시작하는등.. 국내에 다시 리눅스 열풍이 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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