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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마스터1급 : 리눅스의 연도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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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마스터1: 리눅스의 연도별 역사



리눅스의 탄생 배경

 

 

이렇게 리눅스 커널이 처음 공개된 것은 1991년이지만 리눅스의 탄생배경과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50년대부터 컴퓨터프로그램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통해 자유 소프트웨어 내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를 선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리눅스 커널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도 알아보도록 한다.

 

 

 

 

 

1) 1950년대(1950~1959)

 

 

이 시기는 컴퓨터프로그램의 초기 사용시기이다.

 

 

 

 

컴퓨터가 개발되기 시작한 시기이고, 필연적으로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던 시기이다.

 

 

 

 

따라서 모든 소프트웨어(사실 소프트웨어라고 하기에도 부적합했다)는 공개적으로 개발되었으며 또한 소스코드가 모두 공개되었다.

 

 

 

 

 

2) 1960년대(1960~1969)

이 시기는 IBM360으로 대표되는 메인프레임이 지배하던 시기이다.

 

 

 

 

물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매우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1969AT&T의 벨 연구소에 근무하던 켄 톰슨(Ken Thompson)이 유닉스 운영체제를 만들었다.

 

 

 

 

물론, 이때에도 유닉스의 모든 소스코드는 공개되었고 소스코드 접근 자체가 개방되어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AT&T의 전략변경으로 소스코드가 개방되지 않게 되었으며 1960년대 후반에 와서는 소프트웨어는 상품으로 포장되어 판매되는 상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때부터 소프트웨어는 개발한 회사의 비밀이 되어 소스코드를 공개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때에도 유닉스의 모든 소스코드는 공개되어 있었다.

 

 

 

 

따라서 1960년대 중후반기에는 소스코드가 공개된 소프트웨어 공개되지 않은 소프트웨어가 공존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3) 1970년대(1970~1979)

 

 

이 시기는 유닉스 소스코드가 확산되는 시기로서 많은 대학에서 자유롭게 사용하고 수정할 수 있었다.

 

 

 

 

특히 연구소, 대학교 등에서 운영체제에 관심있는 모든 개발자들이 공개되어 있는 유닉스 소스코드를 수정하고 또한 이를 배포하는 시기였다.

 

 

 

 

또한 유닉스 뿐만 아니라 유닉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소스코드가 공개된 소프트웨어들도 자유롭게 수정되고 사용되었다.

 

 

 

 

1970년대 중반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이라는 해커(긍정적인의미에서의 해커를 말한다) 그룹이 실리콘 벨리에서 창설되었다.

 

 

 

 

Ehks 1976년도 경에 빌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였고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발행하는 1976131일자 뉴스레터에 빌게이츠는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를 공개하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제시하면서 소프트웨어가 자산화 상품화되어야 한다는 당시에는 비교적 새로운 개념인 독점 소프트웨어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4) 1980년대 초(1980~1983)

 

 

1980년대 초부터 사용 유닉스가 대두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런 기류를 타고 선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1982년에 설립되었다.

 

 

 

 

그리고 유닉스의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었던 AT&T는 수수료를 높이기 시작하였고 유닉스의 배포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또한 대학에서도 유닉스에 라이선스를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 이 시점부터 소스코드를 공개하고 공유하는 소프트웨어의 개념이 희박해지면서 독점 소프트웨어가 본격적으로 출현하여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제품화하여 유통하고 판매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5) 1984년도

 

 

드디어 공개 및 공유되어 왔던 소프트웨어 소스코드가 완전히 사유화, 제품화, 상품화되었다.

 

 

 

 

이때쯤 초기부터 모든 소스코드를 공개하고 공유해서 개발해 왔던 MIT 연구소의 유닉스 개발자였던 리차드 스톨만은 유닉스가 기업의 수익을 위한 상품화된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으며, “소프트웨어는 공유되어야 한다라는 소신을 가지고 그 뜻을 실현하기 위해 19841월에 GNU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물론, 리차드 스톨만은 GNU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1971년부터 1984년까지 약 13년간 근무했던 MIT 연구소를 그만두었다.

 

 

 

 

이때부터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자유 소프트웨어에 채택하기 위한 GNU 라이선스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6) 1985년도

 

 

리차드 스톨만은 이러한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 재단 설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으며 이를 배경으로 리차드 스톨만은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SF, Free Software Foundation)을 설립한다.

 

 

 

 

 

7) 1989년도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에 필요한 라이선스 개발의 성과로서 리차드 스톨만과 FSF 재단에 의해 GNU GPL v1이 개발되었고 이를 발표하였다.

 

 

 

8) 1991년도 6

 

 

GNU GPL v1을 좀 더 보완한 GNU GPL v2가 리차드 스톨만과 FSF 재단에 의해 발표되었다.

 

 

 

9) 1991년도 10

 

핀란드의 헬싱키 대학의 학생이었던 리누스 토발즈(Linus B. Torvalds)는 자신의 386 PC에서 당시 유닉스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운영체제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서 1991105일 리눅스 커널의 첫 번째 공식 버전인 0.02(리눅스 커널)를 처음으로 뉴스그룹(comp.os.minix 라는 USENET)에 발표하였다.

 

 

 

 

 

이것이 현재의 리눅스로 발전하게 된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0.02 버전에는 GPL 라이선스가 채택되었다.

 

 

 

 

여기에서 리누스 토발즈가 발표한 리눅스는 리눅스 커널만을 의미한다.

 

 

 

 

그리고 1991917일에 리누스 토발즈가 0.01 버전을 개발했으나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다가 나중에 일반에 공개했다.

 

 

 

 

이때부터 리눅스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리눅스 커널 소스코드가 공개된 이 시점 이후부터 리눅스는 리누스 토발즈의 개인 프로젝트가 아닌 수많은 개발자들이 공동으로 개발하는 공개 프로젝트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누스 토발즈는 지금까지 리눅스 운영체제의 개발을 계속하여 오고 있다.

 

 

 

 

리눅스 커널의 이런 공개 프로젝트로의 개발 방식은 리차드 스톨만이 진행하고 있던 GNU 프로젝트가 그 기반이 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리눅스 커널 0.01 버전

0.01 버전은 다음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다.

 

 

 

 

이것은 GPL이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배포 및 상용목적의 이용 외에는 개인적으로는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하다.

URL : https://www.kernel.org/pub/linux/kernel/Historic/

RELNOTES : https://www.kernel.org/pub/linux/kernel/Historic/old-versions/RELNOTES-0.01

 

 

 

 

 

 

10)1992년도

 

 

19922월에 영국의 맨체스터 대학의 맨체스터 컴퓨팅 센터(Manchester Computing Center)에서 만든 MCC Interim 리눅스라는 최초의 리눅스 배포판이 처음으로 정식 출판되었다.

 

 

 

 

 

이것은 리눅스 커널과 그 외 프로그램을 포함한 것으로 초기버전 이후 6~7장의 플로피 디스크를 이용하여 설치하는 것으로 X 윈도우가 포함되지 않은 미니 배포판이었다.

 

 

 

 

이것의 초기 버전은 199111월에 익명(anonymous) FTP를 통해 이용이 가능했다고 하며, 이름에 Interim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것이 최종 또는 공식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19925월에는 소프트랜딩 리눅스 시스템(Softlanding Linux System, SLS)이 출판되었다.

 

 

 

 

이것은 리눅스 커널 외에 TCP/IPX 윈도우 시스템을 비롯한 기본 유틸리티를 포함하는 리눅스 배포판이었다.

 

 

 

 

이것은 상당히 버그가 많았기 때문에 곧 슬랙웨어 리눅스와 Yggdrasil Linux로 대체되었다.

 

 

 

 

데비안 프로젝트의 창립자인 Ian MurdockSLS에 좌절한 것이 데비안 리눅스를 만드는데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한 바 있다.

 

 

 

또한 19921224일에는 Yggdrasil Linux(Yggdrasil Linux/GNU/X 또는 LGX라고도 불렀다)가 출판되었다.

 

 

 

 

 

이때 출판된 것은 알파 버전으로 리눅스 커널 0.98.1 버전, 256 칼러와 함께 1024x768의 해상도를 지원하는 X 윈도우 시스템 v11r5 버전, C/C++ 컴파일러, GNU 디버거, bison, flex make, Emacs 에디터와 같은 GNU 유틸리티 및 다양한 다른 소프트웨어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11)1993년도

 

 

199312월 말경에 리눅스 커널 0.99 버전이 발표되었으며, 이와 거의 동시에 아파치 웹서버 프로젝트(Apache WebServer Project)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93717일에는 현존하는 리눅스 배포판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슬랙웨어 리눅스가 Slackware Linux, Inc.Patrick Volkerding에 의해 처음으로 출판되었고, 2013103일에 14.0 버전이 출판되었다.

 

 

 

 

 

 

 

또한 19938월에 Ian Murdock에 의해 데비안(Debian)이 출판되었다.

 

 

 

 

데비안은 GNU와 리눅스 정신으로 공개적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배포판임을 표방하면서 시작되었다.

 

 

 

 

현재 우분투(Ubuntu)를 비롯하여 데비안을 기반으로 하는 리눅스 배포판들이 다수 출판되고 있다.

 

12)1994년도

 

 

드디어 리눅스 커널 1.0 정식 버전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으며 이때부터 리눅스 커널 1.0 버전을 기반으로 한 많은 리눅스 배포판들이 나오게 되었다.

 

 

 

 

리눅스 커널 1.0을 기반으로 한 리눅스 배포판을 개발하기 위하여 1994년도에 레드햇(Redhat)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마크 유잉(Marc Ewing)은 자신이 개발한 리눅스 배포판의 이름을 레드햇 리눅스를 정하고 그 해 10월 할로윈 버전을 출판했다.

 

 

 

 

 

13)1995년도

 

아파치 웹서버 개발자 그룹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밥영(Bob Young)은 유잉의 배포판 사업을 인수해 자신이 설립한 ACC 법인과 합병한 후에 RedHat Linux Software로 회사 이름을 변경하고 RPM이라는 새로운 패키지 매니저를 포함한 RedHat Linux 2.0 공식 버전을 발표했다.

 

 

14)1996년도

199669일 리눅스 커널 2.0 버전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리눅스 커널 2.0의 가장 큰 특징은 SMP 기능으로 당시 한 개의 프로세서만을 사용할 수 있었던 리눅스에 다중 프로세서를 장착하여 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것은 리눅스가 PC 뿐만 아니라 서버용으로서 그 가능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9610월에는 KDE 데스크탑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15)1997년도

19973월에는 에릭 레이몬드(Eric Raymond)성당과 시장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미구엘 드 이카자(Miguel de Icaza)가 이끌고 레드햇 소프트웨어가 후원하는 GNOME 데스크탑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16)1998년도

 

 

19982월부터 오픈소스(Open Source)라는 용어가 탄생되어 사용되었다.

 

 

 

 

에릭 레이몬드를 주축으로 한 오픈소스 운동가들에 의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8년 넷스케이프사가 에릭 레이몬드의 논리를 수용하여 당시 인기 있었던 웹브라우저인 Communicator의 소스코드를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에릭 레이몬드와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을 관리하기 위하여 OSI(Open Source Initiative)라는 조직을 결성하였다.

 

 

 

 

데비안(Debian)의 자유 소프트웨어 가이드라인을 참조하여 브루스 페런스가 OSD(Open Source Definition, 오픈소스 정의문)를 작성하였다.

 

 

 

 

자유 소프트웨어의 이념적 측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실용적 접근을 취하는 이들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산업계는 물론이고 개발자에게도 경제적인 보상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7)1999년도

 

 

1999125일 리눅스 커널 2.2.0 버전이 공식 발표되었다.

 

 

 

 

19991218일에 리눅스 커널 2.2.13IBM 메인프레임 패치가 포함되면서 리눅스가 엔터프라이즈급 대형 시스템에서 사용될 수 있게 되었다.

 

 

 

 

18)2001년도

 

 

200114일에 리눅스 커널 2.4.0 버전이 발표되었다.

 

 

 

 

2.4 버전에서는 리눅스에서 16개의 프로세스까지 확장 가능하게 되었으면 당시 IBM, SUN, HP 등이 주축이던 엔터프라이즈급 대형 시스템에도 리눅스가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게 되었다.

 

 

19)2003년도

 

 

20031217일에 리눅스 커널 2.6.0 버전이 발표되었다.

 

 

 

 

아울러 리눅스가 대형 엔터프라이즈급 시스템에서도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200310월에 안드로이드를 제작한 Android, Inc.가 설립되었다.

 

 

 

 

이후 이 회사는 2005817일에 구글사에 인수되었다.

 

 

 

 

구글사에서 Android, Inc.의 공동 창립자였던 Andy Rubin가 이끄는 팀이 안드로이드를 개발하였다.

 

 

 

 

 

또한 200312월에 레드햇 엔터프라이즈 버전의 공개된 소스코드에 대해 커스터마이징을 거쳐 배포하는 CentOS(Community ENTerprise Operating System)가 시작되었다.

 

 

 

 

 

20)2004년도

 

 

20041020일에 데비안 GNU/Linux를 기반으로 제작된 우분투(Ubuntu)가 출판되었다.

 

 

 

 

우분투의 첫 번째 버전은 4.10인데 이것은 우분투가 버전을 기술할 때 년도와 월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21)2005년도

 

 

Android, Inc.2005817일에 구글사에 인수되었다.

 

 

 

 

구글사에서 Android, Inc.의 공동 창립자였던 Andy Rubin가 이끄는 팀이 안드로이드를 개발하였다.

 

 

22)2006년도

 

 

20061GPL v3의 초안이 발표되었고 논의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DRM 등을 둘러싼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의 원칙론자들과 실용주의자들의 논란이 일게 되었다.

 

 

23)2007년도

 

 

많은 논의와 토론 끝에 GPL3 정식 버전이 발표되었다.

 

 

 

 

GPL3를 발표하였다는 의미가 곧 수많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들이 모두 GPL3를 라이선스로 채택하였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오픈소스 라이선스의 종류에는 수십가지가 있으며 어떤 라이선스를 채택할 것인가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처음 개발한 개발자나 단체에서 결정한다.

 

 

 

 

하지만 GPL v1GPL v2 GPL v3는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가장 많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 이것들이 채택되었다.

 

 

 

 

2007115일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브로드컴 코퍼레이션, 구글, HTC, 인텔, LG전자, 마벨 테크놀로지 그룹, 모토로라, 엔비디아, 퀄컴, 삼성전자, 스프린트 넥스텔, T-모바일 등의 회사로 구성된 컨소시엄인 오픈 핸드셋 얼라이언스(OHA, Open Handset Alliance)가 모바일 기기의 공개 표준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결성되었고, 이 날 리눅스 커널 버전 2.6에서 제작된 첫 번째 모바일 기기 플랫폼 결과물인 안드로이드가 발표되었다.

 

 

 

24)2009년도

 

리눅스 커널 공식버전 2.6.30 버전이 안정버전으로 발표되었는데, 200912월에 2.6.32가 장기 안정버전으로 발표되어 2014년 중반까지 유지될 예정이다.

 

 

25)2010년도

 

 

리눅스 커널 공식버전 2.6.34가 안정 버전으로 발표되었고 이것은 2013년 중반까지 유지되었다.

 

 

 

 

이 해 8월에는 2.6.35가 발표되었는데 같은 해 12월에 여섯 번째 장기 안정 버전으로 발표되어 2012년까지 유지되었다.

 

 

 

 

 

26)2011년도

 

 

2011722일에 리눅스 커널 3.0이 일곱 번째 장기 안정 버전으로 발표되어 201310월까지 유지되었다.

 

 

 

 

리누스 토발즈는 2011530일에 리눅스의 버전 체계가 바뀌었음을 리눅스 커널 메일링 리스트에 발하였고, 2011721일에 리눅스 커널 메일링 리스트에 리눅스 커널 3.0의 출판을 정식으로 발하였다.

 

 

 

 

 

그는 커널 번호를 2.6.x에서 3.0으로 변경하는 것은 특별한 랜드마크가 될 만한 기능이 있다거나 비호환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리눅스의 20주년을 기념하여 단순히 불편한 번호체계를 버리는 방법이라고 언급했다.

 

 

27)2012년도

 

 

20121월에 리눅스 커널 3.2가 여덟 번째 장기 안정 버전으로 발표되어 2016년까지 유지되며, 비공식적으로는 20174월까지 Canonical에 의해 지원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5월에는 리눅스 커널 3.4가 아홉 번째 장기 안정 버전으로 발표되어 2.1410월까지 유지될 예정이다.

 

 

 

 

 

28)2013년도

 

 

20136월에 리눅스 커널 3.10이 열 번째 장기 안정 버전으로 발표되어 20159월까지 유지될 예정이다.

 

 

 

 

그리고 201310월 현재 최신 안정 버전은 3.11.x이며 최신 프리뷰 버전은 3.12.x이다.

 

 

 

리눅스의 발전 현황

 

 

상기한 바와 같이 리눅스는 소형 PC에서부터 대형 컴퓨터까지 다양한 컴퓨터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리눅스는 사무용 데스크탑용과 서버용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클러스터링 기술을 이용하여 웹 서비스, 온라인 게임 서비스 등 고성능의 컴퓨팅 환경이 필요한 경우에도 리눅스가 강력한 솔루션이 되고 있다.

 

 

 

 

더욱이 리눅스 기반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출현으로 리눅스는 핸드폰을 비롯한 모바일 장치에 탑재되어 스마트폰과 테블릿의 열풍과 함께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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